라플란드코리아 매거진
불멸의 화가, Vincent Van Gogh

빈센트 반 고흐

예민한 감수성의 아웃사이더 '빈센트 반 고흐' 
1853년 네덜란드 남부에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독일 개혁 교회 목사의 아들로 
6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흥미롭게도 고흐에게는 태어나기 전에 죽은 형(1852년)이 
있었는데 그 형의 이름도 빈센트였습니다. 

그의 형이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흐는 살면서 죽은 형을 대신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고 합니다. 그의 원래 꿈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번번히 신학 대학 입학에 낙방하고, 교회에서도 그의 기질과 성격적 문제를 들어 
전도사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녹록지 않은 세상 속 그는 지독한 가난과 고독에 맞서 싸우며 자신을 평생 뒷바라지한 가족이자 동생, 
둘도 없는 친구인 테오 반 고흐를 깊게 의지했습니다. 테오의 조언으로 정식 화가가 되길 결심하고 
그의 나이 27세, 그의 인생, 세상을 바꿀 화가로서 첫 발돋움하게 됩니다.
예민한 감수성의 아웃사이더 '빈센트 반 고흐'


1853년 네덜란드 남부에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독일 개혁 교회 목사의 아들로 6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흥미롭게도 고흐에게는 태어나기 전에 죽은 형(1852년)이 있었는데 그 형의 이름도 빈센트였습니다. 

그의 형이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흐는 살면서 죽은 형을 대신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고 합니다. 그의 원래 꿈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번번히 신학 대학 입학에 낙방하고, 교회에서도 그의 기질과 성격적 문제를 들어 전도사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1. '자화상'그리며 인물의 본질과 내면을 탐구하다.

고흐만큼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는 없으며 그는 항상 무뚝뚝한 얼굴로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남신 자화상의 개수만 무려 43점에 달합니다. 그가 이렇게 많은 자화상을 남긴 이유는 인물의 본질과 내면을 표현하는 인물화를 그리며 그림 실력을 늘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고흐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사진가가 포착한 사진 속 내 모습보다 더 심도있는 나의 초상을 탐구하는 중이다'라고 적었습니다. 강렬한 색과 보색대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 그는 자화상을 그리며 연습했습니다. 물론 모델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자화상 속 고흐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단정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머리는 밀짚모자나 페도라, 군밤모자를 쓰거나 아예 머리카락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수염을 덮수룩하게 기르고 파이프를 물기도 하고 , 수염 없이 말끔하게 앉아 있거나 심지어 귀가 잘린 모습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2. 도시를 떠나 정착한 아를,

그리고 '해바라기'

고흐의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프랑스 남부 아를(Arles)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라고 합니다. 1888년 파리라는 대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는 심신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보다 밝고 따사로운 태양빛과 다채로운 풍경을 갈구했습니다. 이주한 뒤부터 죽기 전까지 약 2년 반 정도, 고흐는 이 곳에서 약 300여 점의 작품을 쏟아냈습니다.고흐는 친구 고갱(Paul Gauguin)과 함께 살기로 한 작업실 '노란 집'을 꾸미기 위해 해바라기를 잔뜩 그리기로 합니다.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는 다른 화가들이 그린 것과 다르게 물감을 두껍게 칠해 꽃의 입체감이 느껴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3. 푸른 밤하늘, '별'보며 꿈을 꾸다.

아를에 머물던 고흐는 편지에 '별을 그리기 위해 밖으로 나갈 것'이라고 적을 정도로 별을 사랑했습니다. 더불어 '캄캄한 어둠이지만 그조차도 색을 가지고 있는'밤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를 주변을 흐르는 론(Rhone)강 위로 빛을 내는 별들이 총총 박혀있습니다. 그리고 밤하늘의 색은 검정이 아니라 푸른색으로 칠해졌는데 이로 인해 고요한 밤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내 분위기는 활기가 넘쳐보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고흐가 고갱과 다투고 자신의 귀를 자른 뒤 생 레미(Saint Remy)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린 작품으로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풍경을 직접보고 그렸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자신이 봤던 밤하늘을 떠올리며 그렸습니다. 보색인 진한 남색과 노란색을 사용해 밤하늘과 별과 달을 더욱 생생하게 그려내었습니다. 한편, 고흐는 죽기 전까지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을 타인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으나 그는 살아생전 사람들에게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4. 마음 속 불멸의 화가

실제로 그가 그린 유화 1,500여 점 가운데 팔렸던 작품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단 하나였습니다. <데이지와 양귀비를 담은 꽃병>도 있긴 하지만, 이건 그의 주치의이자 친구인 폴 가셰의 여동생에게 약값 대신 지불하다시피 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팔린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 37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비록 가난을 벗삼아 평생을 고독하게 보냈지만, 그는 자신이 남긴 수많은 명작들로 하여금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가슴 속에 불멸로 남아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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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그리며 인물의 본질과 내면을 탐구하다.

고흐만큼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는 없으며 그는 항상 무뚝뚝한 얼굴로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남신 자화상의 개수만 무려 43점에 달합니다. 
그가 이렇게 많은 자화상을 남긴 이유는 인물의 본질과 내면을 표현하는 인물화를 그리며 
그림 실력을 늘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고흐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사진가가 포착한 사진 속 내 모습보다 
더 심도있는 나의 초상을 탐구하는 중이다'라고 적었습니다. 
강렬한 색과 보색대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 그는 자화상을 그리며 연습했습니다. 
물론 모델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자화상 속 고흐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단정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머리는 밀짚모자나 페도라, 군밤모자를 쓰거나 아예 머리카락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수염을 덮수룩하게 기르고 파이프를 물기도 하고 , 수염 없이 말끔하게 앉아 있거나 
심지어 귀가 잘린 모습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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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떠나 정착한 아를, 그리고 '해바라기'

고흐의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프랑스 남부 아를(Arles)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라고 합니다. 
1888년 파리라는 대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그는 심신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보다 밝고 따사로운 태양빛과 다채로운 풍경을 갈구했습니다. 
이주한 뒤부터 죽기 전까지 약 2년 반 정도, 고흐는 이 곳에서 약 300여 점의 작품을 쏟아냈습니다. 
고흐는 친구 고갱(Paul Gauguin)과 함께 살기로 한 작업실 '노란 집'을 꾸미기 위해 
해바라기를 잔뜩 그리기로 합니다.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는 다른 화가들이 그린 것과 다르게 
물감을 두껍게 칠해 꽃의 입체감이 느껴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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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밤하늘, '별'보며 꿈을 꾸다.

아를에 머물던 고흐는 편지에 '별을 그리기 위해 밖으로 나갈 것'이라고 적을 정도로 별을 사랑했습니다.
더불어 '캄캄한 어둠이지만 그조차도 색을 가지고 있는'밤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를 주변을 흐르는 론(Rhone)강 위로 빛을 내는 별들이 총총 박혀있습니다. 
그리고 밤하늘의 색은 검정이 아니라 푸른색으로 칠해졌는데 
이로 인해 고요한 밤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내 분위기는 활기가 넘쳐보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고흐가 고갱과 다투고 자신의 귀를 자른 뒤 
생 레미(Saint Remy)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린 작품으로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풍경을 직접보고 그렸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자신이 봤던 밤하늘을 떠올리며 그렸습니다.
보색인 진한 남색과 노란색을 사용해 밤하늘과 별과 달을 더욱 생생하게 그려내었습니다. 
한편, 고흐는 죽기 전까지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을 타인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으나 
그는 살아생전 사람들에게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음 속 불멸의 화가
실제로 그가 그린 유화 1,500여 점 가운데 팔렸던 작품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단 하나였습니다. 
<데이지와 양귀비를 담은 꽃병>도 있긴 하지만, 이건 그의 주치의이자 친구인 폴 가셰의 여동생에게 
약값 대신 지불하다시피 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팔린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 37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비록 가난을 벗삼아 평생을 고독하게 보냈지만, 그는 자신이 남긴 수많은 명작들로 하여금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가슴 속에 불멸로 남아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