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란드코리아 매거진
덴마크 모더니즘의 대표, 핀 율(Finn Juhl)
핀 율(Finn Juhl)은 덴마크의 대표적 모던가구 디자이너 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덴마크의 건축가이자 산업 디자이너이며, 가구 디자이너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1912년 덴마크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미술학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 당시의 주요 건축가이자 저명한 강사인 카이 휘스커(Kay Fisker)의 밑에서 공부하여 
1930년에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 건축 학교에서 입학하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빌헬름 로리첸(Vilhelm Lauritzen) 건축 회사에서 건축일과 함께 가구 디자인을 배웠고 
덴마크 라디오 방송 사의 인테리어를 맡으면서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 전문가로 성장하였으며 
1943년에는 젊은 건축가를 위한 C.F.Hansen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핀 율(Finn Juhl)은 덴마크의 대표적 모던가구 디자이너 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덴마크의 건축가이자 산업 디자이너이며, 가구 디자이너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1912년 덴마크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미술학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 당시의 주요 건축가이자 저명한 강사인 카이 휘스커(Kay Fisker)의 밑에서 공부하여 1930년에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 건축 학교에서 입학하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빌헬름 로리첸(Vilhelm Lauritzen) 건축 회사에서 건축일과 함께 가구 디자인을 배웠고 덴마크 라디오 방송 사의 인테리어를 맡으면서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 전문가로 성장하였으며 1943년에는 젊은 건축가를 위한 C.F.Hansen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1942년 핀 율은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했으며, 오늘 날에는 '핀 율의 집'으로 알려져 있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돈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수년에 걸쳐, 그의 집은 점점 더 자신의 디자인으로 창조되었습니다. 

1945년에 그는 그의 직장이었던 빌헬름 로리첸( Vilhelm Lauritzen)건축 회사를 떠나 코펜하겐의 니하운(Nyhavn)에서 인테리어 및 가구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자신의 디자인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에  덴마크 디자인학교의 교사가 되어 1955년까지 그곳에서 자신의 디자인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1951년 시카고 '굿 디자인' 전시에 참석하였고 뉴욕의 유엔 본부 신탁통치이사회층의 회의실 인테리어를 맡게 되었는데요, 이를 통해 미국인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덴마크의 현대적 디자인(Danish Modern)이 뉴욕을 넘어 전세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1. Model 45 - chair

핀 율이 1945년에 디자인한 의자로, 세계 최초로 좌판과 등받이 직물이 목재 프래임에서 분리될 수 있도록 만들어, 프레임과 등받이는 프레임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뒤집은 모델입니다. 

현대 의자 디자인 역사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팔걸이를 가진 의자'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만큼 우아한 팔걸이가 특징적입니다.

2. Chieftains Chair

194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Cabinetmakers' Guild'에서 전시하기 위해 디자인한 의자입니다. 의자의 좌판이 프레임에서 떠있는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고 전시 중 프레드릭 9세가 의자에 앉아보자 'King's Chair'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좌판과 등받이 직물이 목재 프레임에서 분리될 수 있도록 만들어 프레임과 등받이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집은 모델이기도 합니다.
펠리칸 의자는 핀 율이 1940년에 디자인한 하나의 완성된 조각품인 듯한 의자입니다. 핀 율은 이 의자를 두고 '가구는 가구이지 조각품이 아니다.'라고 하며 가구가 인테리어를 위한 장식품으로 여겨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이 의자에 대한 그의 말 속에는 20세기 초,중반 가구디자인이 기능적이어야 한다는 덴마크 가구 디자인 철학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펠리칸 체어는 그 이름처럼 펠리칸의 모급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된 의자이며 핀 율의 첫작품이자 그를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해준 의미있는 의자입니다.
핀 율은 건축에 있어서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건축 역시 필요하며 가구, 수공예품, 예술이 집을 완성하는 구성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30년대 후반에 가구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작품들은 자기가 직접 쓸 의자와 테이블을 디자인하는 것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약없이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맘껏 펼질 수 있었지만 동시대의 다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비교해보면 핀 율의 가구는 기능보다는 형태를 좀 더 강조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전통을 벗어난 디자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핀 율의 빛나는 아이디어와 가구의 디자인으로 결국에는 스칸디나비아 모던 가구 디자인의 트랜드를 선도하게 되었습니다. 
1942년 핀 율은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했으며, 오늘 날에는 '핀 율의 집'으로 알려져 있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돈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수년에 걸쳐, 그의 집은 점점 더 자신의 디자인으로 
창조되었습니다. 

1945년에 그는 그의 직장이었던 빌헬름 로리첸( Vilhelm Lauritzen)건축 회사를 떠나 
코펜하겐의 니하운(Nyhavn)에서 인테리어 및 가구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자신의 디자인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에  덴마크 디자인학교의 교사가 되어 1955년까지 그곳에서 자신의 디자인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1951년 시카고 '굿 디자인' 전시에 참석하였고 
뉴욕의 유엔 본부 신탁통치이사회층의 회의실 인테리어를 맡게 되었는데요, 이를 통해 
미국인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덴마크의 현대적 디자인(Danish Modern)이 뉴욕을 넘어 
전세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1

Model 45 - chair

핀 율이 1945년에 디자인한 의자로, 세계 최초로 좌판과 등받이 직물이 목재 프래임에서 
분리될 수 있도록 만들어, 프레임과 등받이는 프레임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뒤집은 모델입니다. 

현대 의자 디자인 역사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팔걸이를 가진 의자'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만큼 우아한 팔걸이가 특징적입니다.

2

Chieftains Chair

194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Cabinetmakers' Guild'에서 전시하기 위해 디자인한 의자입니다. 
의자의 좌판이 프레임에서 떠있는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고 전시 중 프레드릭 9세가 
의자에 앉아보자 'King's Chair'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좌판과 등받이 직물이 목재 프레임에서 분리될 수 있도록 만들어 
프레임과 등받이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집은 모델이기도 합니다.
펠리칸 의자는 핀 율이 1940년에 디자인한 하나의 완성된 조각품인 듯한 의자입니다. 
핀 율은 이 의자를 두고 '가구는 가구이지 조각품이 아니다.'라고 하며 가구가 인테리어를 위한 
장식품으로 여겨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이 의자에 대한 그의 말 속에는 20세기 초,중반 가구디자인이 기능적이어야 한다는 
덴마크 가구 디자인 철학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펠리칸 체어는 그 이름처럼 펠리칸의 모급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된 의자이며 
핀 율의 첫작품이자 그를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해준 의미있는 의자입니다.
핀 율은 건축에 있어서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건축 역시 필요하며 
가구, 수공예품, 예술이 집을 완성하는 구성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30년대 후반에 
가구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작품들은 자기가 직접 쓸 의자와 테이블을 
디자인하는 것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약없이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맘껏 펼질 수 있었지만 동시대의 다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비교해보면 
핀 율의 가구는 기능보다는 형태를 좀 더 강조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전통을 벗어난 
디자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핀 율의 빛나는 아이디어와 가구의 
디자인으로 결국에는 스칸디나비아 모던 가구 디자인의 트랜드를 선도하게 되었습니다.